0, 1 (Eternal)

2024.03.13 - 04.07






Goo Sohee

Kim Yujin

KIm Jaeyeon

Lee Jeongeun

YJ CHUNG

JUNG YOONZOO








0과 1 , 영원




조유경(유영공간 디렉터)



0과 1은 무와 유, 시작과 끝, 무한한 가능성, 원과 선이다. 전시는 0에서 시작하고, 1로서 이야기하며 무한한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0과 1은 서로의 영역이 뚜렷하여 결코 서로를 혼동할 수 없는 관계를 지닌다. 숫자 기호로서의 역할과 의미, 조형적 표현 역시 그러하다. <0,1 (Eternal)>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 안에서 작가 구소희, 김유진, 김재연, 이정은, 정연재, 정윤주와 함께 수집하고 발견한 저마다의 0과 1, 채우고 비워내는 방식, 창조하고자 하는 영원의 순간들에 대한 작가들의 시선을 모은다.



0.


0과 1은 숫자의 기초를 이루는 원천적인 수이며, 디지털 세계에서 기본적인 빌딩 블록으로 작용되는 현대 기술과 컴퓨터 과학의 핵심이다. 이진법에서 0은 꺼진 상태, 1은 켜진 상태를 나타내며, 이를 조합하여 모든 디지털 정보를 표현하고, 이러한 이진 코드는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다루는 기본 원리로 작용하며, 우리의 디지털 환경을 가능케 한다. 숫자 0과 1의 의미를 기호학적으로 해석할 때, 0은 연속적인 곡선의 특징을 지는 원의 형태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을 나타내며, 아무것도 없거나 비어 있는 상태를 상징하고, 1은 직선의 형태로 단일성, 창조적인 시작, 혹은 존재의 출발을 상징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문자와 표현들은 이러한 곡선과 직선, 점으로 나타나는 원으로 나타난다. 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이진적 상태와 연속적인 흐름의 조화로 이루어진 복잡한 세계를 반영하게 한다.

0의 조형적 표현은 다양한 크기의 원의 면체로 변화를 가지며, 이 변화는 0이 지니는 풍부한 의미와 1과의 긴밀한 조화의 깊이를 더해 주어 디지털 문명에서 보편화된 무한한 변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표현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1을 0의 대립 개념으로 보았을 때 조형적 표현에 있어서 1은 공간에 수직적으로 안정된 점유를 꾀하는 요소로 활용되며, 0과 1을 변형시킨 크기가 다른 직면체는 반복적 배열로 구성했을 때, 디지털 문화의 보편적 특성인 무한한 복제성을 암시함과 동시에 조형적 요소로의 반복적 구성이 현실과 연계되어진다. 이는 무한히 확장되는 시간성과 공간감, 더불어 영원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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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재는 평면과 회화의 관계를 탐구하며 흥미로운 공간을 찾는다. 흥미로운 공간이란 평면 위에 층을 쌓듯 다른 성질의 레이어를 올려 그 충돌을 관찰하면서 찾은 시각적 조합이다. 작가는 창문을 넘어 바라보는 풍경을 평면으로 바라봐도 되는지, 디지털 화면 너머로 보는 영상은 입체로 파악해야 하는지 등 입체와 평면을 바라보는 시선에 물음을 던지며 선과 면, 색과 물성이 느껴지는 물질들을 이용해 그만의 공간감을 시각화한다. 직선으로 그려진 면의 구분과 색면(色面), 정면에서 바라보면 평면적으로 보이는 입체와, 입체의 공간감이 느껴지는 평면. 정연재는 순수하고 본질적이며 감각적인 미감들을 시각적인 형태로 만들어낸다. 전시장 내의 그의 작업들은 모두 다각에서 빛을 발하며 3차원 이상의 빛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정은의 작업은 주변의 공간 또는 사물을 둘러보고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떠한 상황이나 이야기, 생각 등에서 발췌할 수 있는 분절된 시선들, 이미지 또는 오브제를 채집하고 분류한 뒤 그 이미지를 재조합하거나 나열하여 각각의 이미지로 시각화, 조형화하여 함축적인 장면으로 그려진다. 작가에게 있어 수집은 찰나에 스쳐 지나간 감각의 잔상, 즉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다. 대상은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돌탑이기도, 수석이기도, 움직이는 바람이기도, 잠시 들어왔던 빛의 찰나이기도 하다. 그가 무심히 지나쳤거나, 흐르게 두면 사라졌을 어떤 대상들은 작가의 그림 안에, 현재의 이곳에 존재하게 된다.

정윤주는 시선이 닿고 마음이 머무는 것들, 이야기들을 질감과 양감이 느껴지는 시(詩)로 만들어낸다. <21g>의 시리즈들은 인간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는 가설2), 을 바탕으로 영혼의 무게를 가늠코자 비누를 21그램의 덩어리로, 오랜 시간 다듬고 자르고 조각해낸 과정이다. 21그람의 무게를 지닌 하나의 비누를 자르는 과정에 작가는 비누의 무게가 다음날 2g이 줄어있는 것을 발견한다.3) 비누의 영혼이 2g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작업에 담는다. 작고 여러 개의 21g이 된 비누는 각각의 향을 뿜는다. 정윤주의 시의 세계이다.

김재연은 공존하는 가족 구성원, '가정'의 범주가 달라지고, 아이의 탄생으로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됨으로써 맞이하고 있는 순간들의 시간을 기록으로 담아내기 시작한다. 이전의 작업들이 속해 있는 세계의 변화로써 느껴지는 불안과 그 시간의 경계 안에 불연속적이고 모호성이 강한 이미지로서 풀어내는 시적 작업들이었다면, 점차 시간이 흐르며 개인이었던 작가의 삶 속에 자연히 스미게 된 순간들의 기록들을 담담히 담아낸다. 집 안 깊숙이 스미는 빛, 잠든 아이의 얼굴에 포개지며 부서지는 빛, 지는 햇빛에 담긴 아이의 뒷모습들로 담긴 시선들은 영혼의 반영이고, 적막한 한 순간 우리 손안에 쥘 수 있는 응고된 기억이다. 작가는 그 곁에서 느껴지는 빛의 촉감과 일상의 순간들을 인화지가 아닌, 빛이 투과되는 트레싱지에, 판화지에 직접 붓으로 유제 4)를 발라 결을 만들어 내며 작가와 그가 바라보는 그의 풍경에 한번 더 머무르게 한다.

김유진은 반복에서 발견되는 소멸과 형성의 균형들에 집중하여 현현되어지는 대상들을 바라보고 그려낸다. <고개를 들면 사라지는>은 달이 눈에 맺힌 상의 변화를 좇으며 작가만의 도상들로 기록한 연작이다. 밤이 지나면 달은 눈에 보이지 않게되지만 다시 무한히 반복됨을 안다. 이 지속되는 생성과 소멸은 무에서 유로 혹은 유에서 무로 가는 과정을 나타내며 만물의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드로잉안의 달은 끊임없이 모양을 달리하며 명암 속에서 궤적들을 남긴다. 기하학적 형태의 변화, 색채의 대비들로 선연해진 그 하늘의, 그 눈안에 담겨있던 형상들은 당시의 감각들을 추체험하게한다.

구소희는 안정과 불안정의 사이 작가의 시간을 타원형 구체인 달걀에 빗대어 사진으로 담아낸다. 구소희의 달걀은 습기 속에 갇혀있기도, 겹쳐져 흩어지기도, 부분 부분을 확대하고 뒤집어보기도 하며 오랜 과정을 관찰하여 기록하며 만들어진다. 작가는 달걀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매끈한 곡선, 거칠한 표면이 담긴 사진 이미지에 작가의 감정과 관찰의 과정들을 담아 색과 계조를 직접 조절할 수 있는 사진인화기법 5)들로 작품을 완성한다. 작품은 사실적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진의 기능을 반전시켜 실재하는 달걀을 회화처럼 보이기도, 초상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사라질 대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며, 작가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오브제를 재구성한 영원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



one.


우주의 시간에서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우리의 시간은 직선으로 나아간다. 6) 직선의 시간은 역사적이고 불가역적이며, 시간 안의 모든 것들은 시작과 끝을 갖는다. 빠르게 전진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류는 존재 증명을 위한 기록들, 자기의식의 계속적인 발전으로 창출하는 객관정신으로서의 형성물들로 시간의 순간을 남겨두고자 만들고, 그려내고, 기록하게 된다.

그 순간의 장면, 순간의 화면, 순간의 물성들을 표현하기 위해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고, 순간을 현전 하게 하고자 하는 시간 안에서 영원을 반영하려는 최초의 시도이다. 순간은 시간의 종결이 아니라 정지의 지속을 의미하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현재로서 영원성 그 자체이다.
영원성은 시간이 무한히 이어져있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한계 자체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원성은 시간을 초월해 있다. 영원성은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물리적 세계에 속한 것도 아니다. 영원성은 무(無) 시간적이다. 예술은 그 영원성을 간직하려는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작가들은 그들의 순간을 기호화된 도형과 입체로, 반복에서 발견되는 소멸과 형성의 균형으로, 안정과 불안정으로, 물성의 영(靈)과 향으로, 또 빛과 그림자로 담아낸다. 0과 1 그리고 영원은 현실과 추상, 시작과 끝, 무와 유라는 상반된 개념들을 조합하여 다양하고 무한한 영역의 세계를 만들게 하는 배경으로서 제시되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게 된다.



永遠.


무엇이든 증명되는(하려는) 시대에서 영원의 가치는 무엇일까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 안에 인간의 육체는 유한하고, 과학적 가치와 구체적 미래로의 도약, 물질적 가치라는 이데올로기등을 추구하는 현대의 흐름 속에 예술은 어떤 노래하는 영원이 아닐까. 그리고 그 영원 속에 유구히 머물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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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숫자 01 의 이진코드



2)의사 던칼 맥두걸이 1907년에 진행한 영혼에 무게가 있다면 얼마일까를 측정하려한 실험. 죽기 전 환자의 무게에서 죽은 직후 사망자의 무게를 계산하면 영혼의 무게라는 가설로, 실험 결과 대략 21g이었다고한다.



3)작가의 도록 중 시인 김보라의 글을 참고하였다.



4) 어떤 지지체도 사진 인화지처럼 만들어주는 특수 용액. 실제로 유제라 하지 않으나, 유제의 기능을 하기에 표기.



5)클래식한 사진인화 기법. 이번 전시에서 작가 구소희의 사용기법은 2가지 이다.

1. 검프린트 - 고무 인화법이라고 불리우는 검 프린트는 아라비아 고무 그리고 수채화 물감의 혼합물을 이용해 작업하는 방식이며, 디지털 사진, 아날로그 사진으로 특수 필름을 제작하여 인화하는 방식.

2.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 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는 19세기 후반부터 1920년까지 대중적이었던 클래식  사진인화방식으로 네덜란드의 화가인 안토니 반 다익(Anthony Van dyke, 1599-1641)이 사용한 톤과 칼라를 연상시킨다하여 이 인화방식을 반다익 브라운 프린트라 이름 지어졌다.



6) 직선으로서의 시간이란 은유적으로 시간을 직선으로 의식한 표현이다. 과거-현재-미래가 혼동될 수 없는 우선순위를 가지고 흐르는 시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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