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 rulers
Jae Youl Jeoung
2025. 05. 21 - 06. 01
Wed - Sun
1 - 7 𝘱.𝘮.
오프닝 리셉션
𝘖𝘱𝘦𝘯𝘪𝘯𝘨 𝘳𝘦𝘤𝘦𝘱𝘵𝘪𝘰𝘯
2025. 05. 24 𝘚𝘢𝘵. 5 -10 𝘱.𝘮.


수치로 남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조유경(유영공간 디렉터)
측정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오래된 방식이다. 눈금과 숫자, 기준과 척도를 통해 우리는 불확실한 것들에 질서를 부여해왔다. 그 행위는 거리를 재고, 시간을 나누고, 무게를 정하는 것으로 확장되며 문명화의 또 다른 이름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것들, 이를테면 감정의 깊이나 관계의 온도, 지나간 기억의 농도 같은 것들은 결코 정확히 측정될 수 없는 영역에 남아 있다.
정재열은 이번 전시에서 그 '측정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탐색을 이어간다. 작가가 선택한 오브제는 ‘자’다. 선을 긋고 거리를 재는 가장 단순한 도구지만, 작가는 그 자를 통해 오히려 세상의 복잡성과 사물의 다층적인 쓰임을 질문한다. 그에게 자는 물리적 척도를 넘어서, 관계와 시간, 사유와 감각을 이어주는 조용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정재열의 자는 완벽한 직선도, 균일한 곡선도 보장하지 않는다. 같은 형태의 자를 사용하더라도, 그 자로 그려내는 선은 매번 다르다. 누가, 어떤 손길로, 어느 각도에서, 어떤 속도와 압력으로 선을 긋는지에 따라 매번 다른 형태의 선과, 모형이 그려진다. 그 작은 차이가 쌓여, 드로잉은 유일한 형태를 갖는다. 그는 자의 쓰임을 빌려, 다를 수밖에 없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 다름 속에서만 탄생하는 고유한 형태를 시적으로 엮어낸다. 그가 말하는 드로잉은 선을 긋는 행위이면서도, 동시에 기억을 덧입히고, 감각을 더듬고, 존재의 결을 따라가는 느린 제스처다.
정재열은 이 지점을 찬찬히 응시한다. 그는 자를 통해 선을 긋지만, 결과보다 그려내는 과정의 차이와 사유의 결에 주목한다. '모양자 드로잉'은 정해진 모형을 반복하는 일이지만, 결국 같은 선을 재현할 수 없는 인간적 한계와, 그로 인해 오히려 드러나는 유일성을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서 자는 더 이상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가 아닌, 관계의 밀도와 기억의 깊이를 더듬는 촉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Drawing Rulers》는 그렇게 ‘출발과 끝’이라는 자의 선형적 개념을 해체하고, 그 안에 숨겨진 수많은 과정과 우주를 시각화하는 전시다. 1에서 10까지를 세는 동안, 그 사이를 메우는 무수한 떨림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흔들림, 그 틈에서 파생되는 서사들이 이 전시를 채운다. 숫자는 결과를 말하지만, 정재열이 그려내는 선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과 과정, 그리고 측정되지 않는 감각의 총합이다.
정재열은 자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자의 정의를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용히 재정의한다. 정해진 눈금은 없지만, 정제된 감정이 있다. 일직선의 척도는 없지만, 반복과 겹침으로 완성된 곡선의 여정이 있다.
《Drawing Rulers》는 결국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을 측정하고자 했던 인간의 오래된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다른 방식으로 답하는 전시다. 자라는 틀을 빌려, 오히려 자로 잴 수 없는 것들을 더 섬세하게 느끼는 방법. 그것이 이번 전시가 관객에게 제안하는 새로운 ‘선 긋기’다. 그 선은 더 이상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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