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에 걸린 수평선
Horizon Suspended at the Peak


신정희
SHIN Junghee



2026.10.14 – 11.01




머리를 털며 떨치고 싶은 현실인지, 눈을 감아 되돌아가고 싶은 꿈인지 모를 기이한 장면들. 익숙한 장소와 사물은 어딘가 어긋난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낯섦은 오래 묻어둔 불안을 불러낸다. 조각을 전공한 사진작가 신정희는 사진을 조각처럼, 조각을 사진으로 다룬다. 작가는 거리와 오래된 병원, 예식장 같은 공공장소를 찾아 프레임에 담은 뒤 이들을 접고, 조각내고, 오브제를 덧대어 무대로 세우고, 흐르는 물속에 넣어 재촬영한다. 한 겹의 사진이 여럿의 배제와 결합을 징검다리 삼아 다시 한 겹의 사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진 속 둘 이상의 장소와 시간성이 빚어낸 낯선 조우는 불안 위에 들썩이는 여운을 남긴다. 전시 《꼭대기에 걸린 수평선》은 기이함과 들썩임, 포개진 두 감각을 오가며 단단해진 한 겹의 두께를 탐구한다.   

작가의 사진은 좁은 화각으로 많은 것들을 배제한다. 인물은 찾아 볼 수 없고, 일부의 계절과 어떤 날의 날씨 정도만 가늠할 수 있으며, 지배적인 것인 건축적 요소와 물이다. 문, 계단, 커튼과 배수구, 복도와 막다른 길은 모두 안과 밖, 입구와 출구처럼 경계를 정의하거나 경계 그 자체인 것들이다. 시각과 통행과 방향을 통제하는 견고한 장소들에 물이 사고처럼 들이치고 있다. 공간을 왜곡하고 경계를 굴절시키면서 규칙의 공간들은 어느새 구멍이자 틈새로 전락하고 말았다. 언제나 새것인 동시에 여전한 물은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다른 정서의 모양을 갖는다. 내부의 물은 불길하다. 습기는 가장 취약한 곳부터 거처로 삼아 느리게 몸을 불린다. 그래서 곰팡이의 성장은 알아채기 어렵다. 작가는 사진 무대를 들고 한여름 영월의 작은 폭포들을 누비고, 포천의 빙벽을 올랐다고 한다. 계곡의 유속과 온도와 파동은 장면 속 불가해함을 증폭시킨다.  

디지털 합성이나 AI이미지가 일상 깊숙이 포진되어 있어 우리는 과도한 존재들이 불러오는 낯섦에 곰팡이처럼 무던해진 상태이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묻는 일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지만, 왜 실제여야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두께를 얻은 사진 위로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작용하면서 미리 결정할 수 없는 이미지가 생겨났다. 표면이 물에 의해 훼손되거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겹쳐지는 사이 작가는 결과를 통제하는 역할에서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자리에 가까워진다. 적극적인 개입인 동시에 거리가 생긴 것. 그리하여 사진은 조합이자 지극히 사실적인 사건이 된다.

꼭대기라는 말을 내뱉으면 몸에 감각이 생긴다. 뽀족하게 흔들리는 신체성. 그 위에 걸린 수평선은 공간적 질서를 뒤집는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장면들이 있다. 불안과 수치심을 유발했던 기억이 떨쳐낼 수 없는 악몽처럼 불현듯 일상을 침범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신정희의 무대는 가족, 학교, 마을, 도시, 작은 공동체부터 커다란 집단에까지 편재한 갈등과 단절의 상황들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가 겪는 딱한 마음에 구멍을 뚫어 잔잔한 물로 숨 쉬게 하고, 떨어지는 폭포의 말을 담는다. 작품의 제목들은 미처 뱉지 못한 감정들이 뒤늦게 쏟아져 내린 것들로, 들썩이는 것은 물의 표면이기도 마음의 말이기도 하다.《꼭대기에 걸린 수평선》은 작품 내외부에서 두 개의 지평이 충돌하도록 유도한다. 사진과 조각이, 계단과 수면이, 잘게 부서지는 한낮의 햇빛과 길게 뻗은 복도가 맹렬한 존재감으로 서로를 의식한다. 그들의 부딪침과 메꿈이 양립하기 어려운 세계들을 동시에 감각하게 하며 장소에 깃든 불안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신지이(독립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