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gestible [ ]
함주연 허세빈
Juyeon HAM Saebin HOH
2025. 12. 10 - 12. 21
소화되지 못한 [ ]
완벽한 영원이란 불멸의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만큼,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우리네 시간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능의 역설로 끊임없이 뛰어드는 이유는 결국 삶은 실패한 미학적 행위 임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애석하지 않은가, 불변하는 것은 없다.
다각의 일인칭들이 혼재하는 생의 현장은 홑몸이 아니기에 때로는 비워진 역설이 존재한다. 시간의 공식 아래 [ ]에서 산출되는 가변의 식, 그 안의 명제들은 모두 기억과 의식 아래 변형된 값으로 도출된다. 마치 과거의 영광을 소환하지 못하는 그시절 밴드처럼.
대상들은 불시에 변형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우리는 시간조차도 다층적, 비선형적임을 마주하며 애당초 과거-현재-미래가 직선형이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 ]안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서사의 불일치 속에서 무너지는 것은, 타자가 되어버린 변수뿐만 아닌, 변수와 나를 구성하는 기억의 구조물이다. [ ] 앞 당신은 무엇을 마주할 것인가?
허세빈은 얼마간 일상의 일부였던 대상이 실은 한없이 먼 존재였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 경험하는 측량할 길 없는 추락, 그리고 발생하는 허무와 무용에 대해 신화적 모티브로 이야기한다. 무용한 일에 의식적으로 시간을 쏟으며 반복적 무의미를 감내하는 부조리는 지나간 흔적 그대로를 접거나 비워내는 반복적 소거 행위로 연결되며, 이는 곧 일상의 반복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여백과 구겨진 윤곽이 된다. 여백의 틈으로 역류된 [ ]들은 또 한 번 먼 존재로 변질되어 끝내 해독되지 못한 상태로 남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허세빈은 무언가 다녀간 자취를 통해 전시공간을 재 탐색하며 ‘변질되는, 임시적인, 소실되는, 결국 소화될 수 없는’ [ ]을 마주한다.
함주연은 1인의 생애, 즉 생과 멸의 시스템을 수동적‘1’과 즉흥 리허설이라 지칭한다. 태어남은 의도와 설계에 비롯되지 못하며, 죽음 또한 피할 수 없으므로 생애는 수동적 1회가 된다. 이는 완성되지 못한 초안, 즉흥 된 리허설이다. 수동적 1회에도 불구하고 즉흥 리허설의 시간 속에 나타나는 삶의 집념과 욕구의 존재는 의문스럽기 마련이다. 함주연은 이러한 의문을 언어를 통해 제기한다. 역사적 기표이자 신체 지각의 베일이 되는 언어의 양면성은 작가에게 냉소적 게임을 시작하기에 좋은 도구이다. [ ]를 삼키기 전, [ ]안의 값들로 함주연은 즉흥 리허설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한다.
전시의 [지평]은 광활한 만큼 왜곡과 확장이 비일비재하다. 사실, 이 내던져진 [ ]의 세계가 배설하는 냉소와 회의를 소화한 이가 되려 삶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그 소화과정 직전에서 멈추어 변형된 것들을 인식하는 다양한 경로와 현상을 추적한다. 덧없음이 숨 쉬는 여백에서 삶과 집념이란 것은, 어느 한켠 작고도 아프게 박힌 티눈 같은 전재이기 때문이다. 구차할 수 없다면, [ ]는 끝내 비어 있을 것이므로. 삶의 한 기점에 놓인 모든 이들에게 전시를 바친다.
글 | 함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