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루
김성태 KIM SUNG TAE
2025. 02. 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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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6. 일
김성태 KIM SUNG TAE
2025. 02. 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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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6. 일
‘ 나루’와 ‘-이기’론: 김성태가 입체에/를 대하는 태도
콘노 유키
2022년에 열린 개인전 《투명한 낫으로 그려진 지붕》(WALLA, 도쿄)에서 김성태는 여러 개로 나뉜 면을 이어 붙여 입체를 만들었다. 전에 발표한 <겨울이라 설정하고 낫을 그리면>(2021)이 군상과도 같은, 어떻게 보면 설치 미술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었다면, 《투명한 낫으로 그려진 지붕》에서 선보인 작업은 훨씬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보였다. 대리석이나 석고를 깎은 것과 다른, 속이 비어 있는 <무제>(2022)는 면으로 서 있는 동시에 공백으로, 그리고 중력으로 서 있다. 이 입체를 입체로써 유지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은 소재나 표현 방식을 통해서 확인된다. 같이 소개된 <무제>(2022)은 전시 공간 벽에 설치되었는데,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벽이라는 지지체의 존재와 그 속성을 거스르는 작품의 관계성이다. 이 작업을 통해서 벽은 작품을 지탱하는 동시에 펼쳐놓을 수 있는 곳이 된다. PP 종이로 만든 면들이 벽을 느슨히 점유해 나갈 때, 종이와 종이테이프로 만든 하얀색 입체는 대리석처럼 서 있다. 자립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놓이는 곳에 따라, 표현 방법에 따라, 재료 속성에 따라 호응하는 관계를 통해서 작품은 만들어지고 놓인 것이다. 작가가 본인의 작업을 설명할 때, ‘이’와 ‘기’로 설명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김성태의 작업에서 작품 재료와 표현 방법, 그리고 공간과 작품의 관계는 사물의 질서(‘이’)와 움직이는 힘(‘기’)를 통해서 자립적인 대신 상호 대응하면서 거기에 있다.
그간 김성태는 나뭇가지의 모양새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그려가는 힘의 방향—연결과 분열을 작업으로 다루어 왔다. 한 지점에서 뻗어나간 선은 선과 선 사이에 투명한 선이 하나 더 그어지면서 면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볼 때, 뻗어나간 가지는 이 공백에 의해 받쳐져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어떤 긴장감이 담기는데, 그것은 나뭇가지를 뼈대 삼아 살을 붙여가는 시선과 그 뼈대 자체가 떠받쳐져 있다고 보는 시선이 합쳐진 결과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이’와 ‘기’의 관계는 개념적으로 지지체/대상으로 나누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개별 작품 안에서도 물론이지만, 공간과 작품의 관계, 심지어 한 작품이 변하는 과정에도 해당한다. 2023년에 열린 개인전 《냇물에 가라앉는 낫》(프로젝트 스페이스 공공)에서는 일본에서 가지고 온 평면을 다시 입체로 만들거나, 일본 유학 전에 만든 작업을 재-맥락화하여 다시 펼쳐놓았다. 이어서 작년에 열린 개인전 《나루 끝에 진 그늘》(공간형)에서는 함석판을 잘랐을 때 나오는 직선적 형태와 그 외에 남은 형태를 나누어 각각 재-조합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를 납작한 입체 작업이라고 (뭉뚱그려) 말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열리는 개인전 《나 루》까지 김성태는 ‘이’와 ‘기’가 어떻게 작업 과정뿐만 아니라 전시장에서, 더 나아가 작업 생활을 통해서 호응하는 형태로 나오는지 시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나뭇가지 형상에 읽어낸 긴장감은, 김성태가 입체를 대하는—한편으로는 입체에 대하는=맞서는 태도로 작업에 나타난다. ‘입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부피를 가진 덩어리를 생각한다. 입체를 전개도로 쪼갤 때 본래 생기지 않은 선, 즉 이음매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평면과 입체, 선과 면의 관계가 한 몸(체)인 것이 입체 작업이다. 속은 들여다볼 수 없는, 면에 둘러싸여 부피를 이루고 자발적으로 서 있는 덩어리—이것에 대한/을 대하는 김성태의 시선은, 안팎에서 지탱하는 힘에 주목하여 작업과 전시 공간을 통해서 풀이된다. 유영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나 루>는 제목만 봐도 《냇물에 가라앉는 낫》과 《나루 끝에 진 그늘》의 관계성을 떠올릴 수 있다. 작가가 설명하듯이, 투명한 낫(2022)이 냇물에 가라앉으면서(2023) ‘그늘’이라는 불순물을 만들었다(2024). 일련의 과정은 작업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전시 또한 이전-이후에 호응하도록 만들어진 점을 보여준다. ‘그늘’로 비유되는 2024년 전시에서 강조된 수직적 형태는 2023년의 전시에서 여러 시간축이 퇴적된 것을 한 번 걸러내듯이 바라본 결과, 이전에 실천하지 못했던 평면-(전시)공간의 관계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다시,) 수직적 형태가 강조된 2022년의 개인전에서 가벼운 재료를 통한 실험을 거쳐 나온, 기법적으로 정제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나 루>(2025)는 ‘끝에 진 (낫의) 그늘’이 빠진 상태이다. 서 있는 입체보다는 징검돌처럼 바닥에 놓여 있는 작업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두 방과 벽을 통해서 이어진다. ‘징검돌’이라는 비유는 작업의 생김새만 보고 말한 것이 아니다. 강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겨내면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징검돌과 나루는 수행한다. 전시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나루는 옆에 오는 작업과 전시장 안의 흐름을 만들고 연결한다. 바닥과 벽으로 이어지는 흐름, 종이와 금속, 표면이 거친 작업과 매끄러운 작업, 패인 것과 튀어나온 것이 전시장과 작품을 통해서 각각 호응하는 구성을 띤다. 작업을 관통하는 ‘이’와 ‘기’의 논리가 이번 개인전에서 작품과 전시 공간 안의 호응으로 이어진 셈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입체란 궁극적으로는 놓이는 공간, 그 공간을 구성하는 벽면과 나누는 선을 향한다. 이는 사실 2022년, 유학 간 일본에서 경험한 판데믹 시기의 ‘어두컴컴한’ 시선을 작품으로 잘 풀어내고자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2022년의 개인전을 준비했을 때, 김성태는 작은 생활 공간을 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당시에 작품을 기록한 사진을 보면 어두운 공간 안에 하얀 입체가 서 있다. 입체에 대한 김성태의 관심은 실내 공간만큼이나 어두운 나날을 보내던 실내에서 치던 발버둥에서 출발하여, 전시와 작품을 통한 공간에/을 대한 접근—’손에 잡히는’—으로 풀이되었다. 필자가 보기에, 여기에 가장 큰 ‘이’와 ‘기’의 관계가 있다. 채광이 잘 들어오는 방, 창틀이 있던 위치가 면으로 뚫려 있는 구조, 카펫을 깔아놓은 바닥을 통해서, 작가는 그동안 시도해 온 작업을 가지고 공간을 대한다. 그것은 냇물 자체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단위를 갖는 동시에 옆에 오는 작업과 놓이는 공간과의 상호 대응—やりとり(야리토리)를 통해서 구현된다.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 중에 ‘야리토리(やりとり)’가 있다. 일본어로 ‘주고받기’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이기론적 관계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야리’가 ‘주는 것’이라면, ‘토리’는 ‘받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평면-스케치를 반복해 온 2022년의 어두운 작업 공간과 달리, 이 밝은 곳 안에서는 전시 공간을 통해 입체적 흐름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야리토리’의 대응 관계처럼 전자 없이 후자 또한 불가능했고, 후자 없이 전자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에는 입체에 대한/를 대하는 시선은 “무엇이 입체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돌아온다. 주고 또 받는, 받아-주는, 그리고 빼놓는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형태인 동시에 흐름, 그 둘이 공존하는 긴장감이다. 뭔가를 떠나보내게 만드는 ‘나루’라는 장소, 아니 ‘공간’은 일본어로 풀이하자면 ‘(뭔가가) 되기(なる 나루)’의 자리가 된다. ‘이’와 ‘기’의 관계를 통해서 뭔가가 되기, 바꿔 말해 ‘(뭔가-)이기’를 고민해 온 김성태가 갖는 입체에 대한/를 대하는 태도가 그야말로 ‘응축된’ 동시에 ‘풀린/풀이된’ 긴장감이 《나 루》에/로 구현되었다.
나루와 조각 ; 횡단하는 선, 머무는 공간
조유경 (유영공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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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의 조각은 공간을 가르고, 물질을 잇고, 경계를 허물며 사유의 흐름을 만든다. 김성태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적 요소를 넘어, 시작과 끝, 내부와 외부, 연결과 해체를 아우르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 순환과 작가가 만든 흐름은 입체로운 선(線)1)이 된다. 선은 투명한 형태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질량을 획득하고 구조를 형성하고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 전시는 이러한 조형적 변화를 따라가며, 선과 조각이 공간을 구축하는 방식과 물질이 변형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작가는 지금의 작업이 시작된 2016년부터 조각적 사고와 시도를 심화해왔다. 그의 작업에서 선은 단순한 형태적 실험이 아니라, 물질과 개념이 교차하는 과정이며, 선이 면이 되고 면이 다시 공간으로 확장되는 순환적 흐름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재료의 속성 또한 변화한다. 종이처럼 가볍고 유동적인 선은 점차 무게를 획득하고, 단단한 금속으로 변형되며, 다시 해체되어 또 다른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변형은 단순한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조형적 사고를 반영한다. 선은 해체되고 다시 연결되며, 특정한 틀에 고정되지 않고 공간 속에서 흐른다. 이는 자연의 성장과 가지치기와도 닮아 있으며,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면서 유기적으로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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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는 물을 건너는 장소이자, 이동과 변화를 상징하는 경계적 지점이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나루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건너감과 횡단, 연결과 흐름을 아우르는 개념적 공간이다. 그의 작업에서 선은 이러한 나루의 개념을 반영하며, 단순히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나들며 형식과 물질을 재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조각을 이루는 요소들은 가벼운 물질에서 출발하지만, 접히고 포개지고 확장되면서 질량을 획득한다. 이는 김성태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흐름이다. 무형의 선이 점차 형체를 갖추고, 다시 해체되어 새로운 구조로 변화하는 과정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물질이 공간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탐색하는 행위이다. 그의 작업이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고, 공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열린 구조임을 보여준다.
공간안에 조각의 배치는 선과 공간의 리듬을 강조하도록 구성되었다. 선이 확장되는 흐름을 따라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조각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며 그 흐름은 공간 속에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형성한다. 작품들은 서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으며, 이 간격이 가져오는 시간적 흐름은 작업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조각이 밀집된 부분에서는 긴장과 응축이, 넓게 열린 공간에서는 여백과 해방감이 조성된다. 이러한 배치는 관객이 선과 공간의 관계를 더욱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전시공간의 벽과 바닥의 경계를 흐린다. 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점차 두꺼워지고, 면으로 변하며, 다시 입체적인 구조로 확장되는 과정이 보인다. 조각들은 종이처럼 가벼운 형태에서 금속의 견고한 구조로 발전하며, 때로는 날카로운 엣지를 드러내거나 유기적인 곡선으로 공간을 감싸는 형태를 띤다. 이를 통해 공간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움직임을 담아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루는 정지된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하는 공간이 된다.
<나루>는 단순한 조형적 시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선이 공간을 구축하고 시간을 담아내는 방식에 대한 김성태의 작업적 사유이다. 김성태는 선이 머물렀던 공간과 새로운 움직임의 순간을 탐색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형적 여정을 이어간다. 그의 작업 속에서 선과 공간, 시간은 다시 새로운 경계를 향해 나아간다.
1) 작가의 작업적 흐름의 형태 ([시작과 끝/끝과 시작]는 제작, 공정, 형식, 흐름과 맥락에서 반복되어 프랙탈 구조를 취하며, 연결과 확장의 태도로 공간에서 [시작과 시작/ 끝과 끝]의 언어로 공간을 구축되는 형태) 이후 선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