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꿰매기 Stiching Crow

김민정 KIM MINJUNG

2025. 10. 01 WED – 10. 12 SUN






《까마귀 꿰매기》에 부쳐

이 글은 전시에 부치는 글이자 민정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 두 가지가 모순되지 않는 이유는, 나는 언제나 민정의 작업을 그의 또 다른 얼굴, 그의 분신처럼 느껴왔기 때문이다.

2022년, 처음 민정을 알게 되었을 무렵 그는 로드킬 당한 새들의 사체, 주로 까마귀를 꿰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터져버린 내장을 씻고, 찢겨나간 살과 깃털을 이어붙이고, 제자리를 잃은 날개를 다시 꿰매어 주는 일. 사람들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돌리는 장면을 민정은 지나치지 못했다. 그는 도로 위에 남겨진 몸을 작업실로 데려와 정리하고 봉합하는 일을 한동안 계속했다. 누군가에게는 혐오스러운 잔해일 뿐인 그 몸들이, 그에겐 그렇지가 않았다.

죽음을 완결이라 부를 수 있다면, 로드킬은 미완의 죽음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가 너무도 성급히 잘려나가 버려, 슬픔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존재. 남겨진 몸은 이내 더 무심히 짓밟혀 흐려지거나, 이름 없는 잔해로 버려진다. 길 위에 고아처럼 놓여 있는 사체 앞에서, 민정은 어쩌면 자기 안에 있는 고아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생의 흔적을 간직한 채 갈 곳을 잃고 흩어져 봉합되지 못한 정동들. 그것은 그의 안에 있던 감정들의 형상이기도 했다.

끝내 애도되지 못한 상실, 말해지지 못한 슬픔, 봉합되지 못한 고통은 자리를 잃고 고립된다. 그는 삼키지도 토해내지도 못한 감정을 오래 입안에 머금은 채 세상과 마주했다. 내키지 않는 사람들과 내키지 않는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보여줄 수 없는 액체 같은 무언가가 목구멍 어딘가에서 출렁였을 것이다. 나는 이번 전시가 바로 그 액체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민정이 혼자 끌어안고 지내온 감정들 뒤에는, 무엇이 발화될 수 있고 무엇은 억눌려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규범이 있다. 까마귀가 원래의 생태와 무관하게 불길함의 상징으로 낙인찍혔듯, 사회는 특정한 감정만을 승인하고, 불편하거나 불온하게 여겨지는 감정은 배제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매 순간은 자기 검열의 그물망에 걸리고,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은 끝내 말해지지 못한 채 가라앉는다. 한 사회가 어떤 감정을, 어떤 어휘와 억양으로, 어느 장소에서, 어떤 강도로 발화할 수 있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단순히 법과 제도 만이 아니다. 예의와 교육, 미디어의 관행, 서비스 산업의 감정 노동, 체면과 평판을 둘러싼 문화가 겹겹이 쌓이며, ‘적절한’ 감정 표현은 곧 개인의 품위와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목소리의 높낮이, 표정의 온도마저 규율하는 이 표출 규범은, 결국 ‘무엇을 느끼는 것이 옳은가’라는 감정 규범으로 내면화된다.

그렇게 우리는 감정과 언어를 분리하는 법을 배워간다. 직장에서 ‘프로답다’는 말은 곧 감정을 감추는 능력으로 환원되고, 서비스의 자리에서는 ‘예민한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정중한 어조의 스크립트를 외운다. 공적 사건 앞에서도 ‘얼마나’ 슬퍼하거나 ‘어느 정도’ 분노할지는 정치적 판단이 된다. 허용된 감정의 범위가 좁아질수록 우리는 언어를 잃는다. 과도한 감정을 가진 사람은 미숙하다 낙인찍히고, 무감한 사람은 냉정하다 비난받는다. 감정과 언어 사이의 불일치는 깊어지고, 남겨진 감정은 고립된다. 그러나 남겨진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말로 붙잡히지 못한 감정들은 그림자처럼 내면 곳곳을 배회하며, 더 샅샅이 스며든다. 까마귀는 그렇게 억눌린 감정의 형상이다.

민정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자신 안에 흩어져 있던 까마귀를 꿰매는 것을 시도한다. 그러나 로드킬 당한 새를 아무리 씻고 꿰매어도 이전의 형상으로 돌아오지 않듯, 꿰매기의 행위는 대상을 온전히 복원하지 못한다. 전시는 이 불가역성을 회피하지 않는다. 상처는 여전히 상처이지만, 꿰매진 자리에서 그것은 흔적이 된다. 상처가 흔적이 될 때, 그것은 지워져야 할 고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기억이 된다. 나는 이 전시가, 민정의 손길로 봉합된 상처들이 다시 고립되지 않고, 새로운 언어와 기억으로 다시 살아가게 하는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글ㅡ 강하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