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세레 Texere

이현화 (이원사물) Hyeonhwa Lee

기획  박상은

2026. 05. 06. — 05. 17.



텍세레(texere), 씻겨 나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박상은 



이현화는 언어의 한계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것은 말과 글을 통해 어떤 이의 의도가 다른 이에게 어째서 온전히 전달될 수 없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한국어든 영어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해석과 소통의 불일치 혹은 오류는 빈번하다. 그래서 같은 언어 안에서도, 다른 언어 사이라면 더욱이 끊임없는 번역이 필요하다. 심지어 언어 이외에 표정이나 몸짓 같은 의식적, 무의식적 행위, 시청각적 상징물이나 물건 등이 전달되지 못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동원된다. 언어라고 여겨지는 제도적 기호를 벗어나는 이런 것들마저 언어를 보완하려 든다. 소통을 위해 인간이 구현하는 어디까지가 언어이고 비언어인가? 비언어는 일종의 대안 언어가 될 수 있진 않을까?

작가는 먼저 말보다는 글, 그러니까 확고부동해 보이는 활자로 인쇄된 글(text)를 붙들고 언어의 기원과 그것의 작동방식을 역추적하기로 한다. 라틴어 ‘texere’는 ‘text’, ’textile’ , ‘texture’와 같은 단어의 어원이다. 본질적으로 ‘짜다’(weave), ‘엮다(braid)’,‘구성하다(construct)’는 의미다. 처음에는 베틀로 천을 짜는 행위를 뜻했지만, 집이나 배를 계획에 따라 만들기, 더 나아가 글의 구성을 이르기까지 의미가 점차 확장되어 왔다. 이현화는 활자를 포함해 ‘텍세레’라 부를 수 있는 활동을 스스로, 여러 사람과 함께 다양한 작업의 형태로 수행하면서 그것의 의미를 감지해 왔다.

지난해 세검정 인근에서 진행한 ‘세초(洗草), 다시 흐르기’ 워크숍도 그 일환이다. 조선시대에 초고로 쓴 실록을 물에 빨아 먹을 지워내는 의식적인 행사 ‘세초’를 차용했다. 이는 ‘텍세레’의 역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촘촘히 엮인 기록을 물로 씻어내어 없음의 상태 혹은 순수한 재료의 상태로 되돌리는 행위라 볼 수 있어서다. 언어의 물질성, 수행성, 그 안에 담긴 감각을 탐색해 보려는 시도다. 세검정 일대를 온몸으로 감각하며 느낀 바를 한지로 만든 천에 먹으로 새기고, 이를 공동으로 빨래한다. 그 위에 다시금 과거의 감각을 떠올리며 실로 형태를 수놓기까지, 작가와 참여자는 기존의 짜임 구조를 해체하고, 그 틈새에서 다시 ‘텍세레’를 수행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소지>(2026)는 지난 워크숍에서 선보였던 <물로 쓰기>에서의 감각과 물질을 치환시킨 결과물이다. 그 때의 <물로 쓰기>는 건물 처마에 수직으로 매달린 커다란 한지에 먹이 아닌 물 머금은 붓으로 그리고, 써 내려간 것이었다. 젖고, 마르기를 반복한 한지는 그것이 그림이든 언어든 참여자의 수행이 스며든 매체가 되었다. 이현화는 이 매체를 이번 작품 <소지>(2026)의 소재로 사용했다. 한지를 엮어 만든 이 오브제는 새로운 ‘텍세레’다. 한편, 관객은 이 오브제를 마주한 상태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물로 쓰기>(2026)에 참여하게 된다.

지난해 말부터 작가는 쓰기, 말하기, 듣기와 같은 언어적 행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를 둘러싼 감각에 집중해 왔다. 텍스트의 고정성이 해체되는 과정을 다양한 작업을 통해 추적하면서, 쓰기란 몸의 기억, 또는 몸을 통한 감각에서 기원한다고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감각보다는 자신의 신체를 둘러싼 미세한 내외부의 감각에 집중했다. 휘발되기 쉬운 이 감각을 기록 가능한 단위로 치환한 ‘소매틱 데이터’로 삼아 데이터를 채집하고 있다. 드로잉과 자수, 퍼포먼스로 펼쳐지는 <소매틱 데이터> 시리즈는 대안적 언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구체적 실천이다.이현화의 이번 개인전은 우리를 둘러싸고 규정해 온 언어, 특히 견고해 보이던 텍스트를 지워내고 씻어내는 수행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느슨하고 헐거워진 텍스트의 틈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감각과 언어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