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빈 진민경
Wonbhin SON Mingyeong JIN
2025. 06. 11 - 06. 22
WED - SUN
1p.m. - 7p.m.
잠시만, 의 만남일지라도
콘노 유키
지나가다가 문득, 사람이 말을 건다. 그 한마디는 나의 발걸음을 순간 멈추게 하며, 곧이어 말이 들려온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걸까? 당혹스러움 속에 기대와 긴장이 팽팽해진다. 나 같았으면 어땠을까? 나 역시 상대방에게 그럴 때, 충격과 긴장, 설렘이 한 몸이 된 상태가 된다. 말 같지 않은 말부터 시작하여 나의 의사를 조금씩 꺼내어 전달한다. 잠시에 시간과 주고받음이 누적된다. 귀 기울이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 몇 번의 주고받음 끝에 무엇이 성사되었을까? 성과라고 할 만한 성과,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성과는 미미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지근한 결말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에서 상대의 눈높이를 맞추고, 의견을 듣고, 관계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손원빈과 진민경은 그것을 ‘물렁한 원형들’이라는 말로 이야기한다. 그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생각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시 《물렁한 원형들》에서 꺼내어진다.
손원빈은 프로젝트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랑하나? (we love for ?)>(2023-)를 그간 진행해 왔다. 이 연장선상에서 사람들과 소통한 일련의 수행 과정, 이를 기록한 자료나 영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제작한 작품을 전시에 선보인다. <Used, Our, Things, Or, -ing.>(2025)는 온-오프라인으로 만난 사람에게 작가의 생일 케이크를 나눈 작업 <Giving Love on My Birthday>(2024)에서 출발하였다. <기다리고 있었어?(Were you waiting?)>(2025)는 <Waiting For Replies to Letters 40>(2024)에서 작가가 다양한 장소에 두고 간 사랑에 관한 편지의 답변/무응답을 섞어서 재구성한 것이다. 익명의 일인 또는 불특정 다수와의 접점을 가진 두 작업은 작가 본인에 의해 다시 변형된다. 관계는 그 안에서 새로 구축되는데, 여기에 관객의 시선도 들어갈 틈이 생긴다. <...(I)>(2024)와 <...(II)>(2025)는 침묵을 나타내는 ‘…’의 표현에 어떤 말과 생각의 주고받음이 있었는지 상상하게 된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독백을 여러 번 쌓아 올리고 또 해체하는 수행 과정의 기록물이다. 대면할 때, 우리는 작업에 나타난 것 이면에 있는/있던 관계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진민경은 공원이나 지인의 소개로 만난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한다. 각자의 이야기를 사운드로 기록한 <희미한 말들>(2025), 손도장을 찍은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2025), 대화 시간을 제목으로 가져온 드로잉 작업 <176’44”>, 인생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적은 <흐릿한 말들>(2025)를 들여다본다. 손도장은 각각 다르다. 사람마다 다르고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유명인의 손도장과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을까—그것은 꼭 구별되는 것일까. 손이 무엇을 말해줄까? 이 흔적들에서 나는 어떤 부분에 공감하고 나나 나와 가까운 사람의 그림자를 떠올릴까? 이것들은 모두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개개인의 존재감, 더 나아가 진민경과 그들이 만난 시간과 장소에 대해 관객의 상상을 이끈다. 진민경이 이야기를 나눈 그때,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 들려주는 과거와 지금 생각하는 것들—이 모든 것이 작품이 놓인 곳, 그 시간 안에서 꺼내어진다. 두 작가의 작업에서 읽거나 쓰고, 찍거나 반복하는 기록 행위는 수행성을 동반하는데, 이 수행성이란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서 만난 사람들, 창작자와 작품의 관계에서 퍼져나가 관객과 작품, 그리고 관객이라는 한 사람을 둘러싼 관계망에 시선을 돌릴 기회가 된다.
관계에 대한 물음은 새로운 기술적 환경 안에서도 계속 남는 과제이다. 손원빈과 진민경의 일상처럼,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관객은 한 번쯤 관계를 고민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직장 생활은 물론, 인터넷 환경 안에서도 관계는 탄생한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익명의 사용자(user), SNS상의 대화, 누구를 지지하고 거부하는지ㅡ이런 삶에서 관계는 내적인 만남보다는 가시적인 것이 되었다. 두 작가에게 편지의 전달 방식이나 어르신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방식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과도하고 극단적인 관계 형성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관계는 무엇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감정이나 경험을 ‘공유’할 때 상대방과 나는 어떻게 관계하는가ㅡ이런 질문이 두 작가의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다.
만남은 처음에는 항상 낯설다—약속된 경우에도, 우연인 경우에도. 손원빈과 진민경이 작업 과정에서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만났을 때, 처음에는 서로 낯설었을 것이다. 본인 생일에 남과/에게 나눈 케이크, 답신을 못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직접 갔던 장소들, 개개인의 작은 삶에 귀 기울이면서 알게 된 사소하고 평범한, 그러나 때때로 크게 다가오는 이야기들. 두 작가가 관계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관계를 통해서 기록하는 방식은 낯섦을 해소하여 보여주는 대신, 밀도 있는 관계를 만든다. 관계망이라는 망망대해를 잘 헤엄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관계의 명료화이다. 상대방과 나, 주인과 하인, 남과 여, 작가와 감상자처럼 구분하고 정의하기. 그러나 이런 방법은 그야말로 덫에 걸릴 위험도 있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덫은 안락함일까 아니면 구속일까. 걸렸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는 관계의 삶을 ‘물렁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돌고 돌아 나와 상대방의 주고받음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주고받음에는 상대와 나가 서로 침투하는 접촉면이 있다. 이 경계에서 긴장과 정의라는 딱딱함은 물렁해진다. 우리는 해소되지 않더라도 만날 수 있는 관계를 잠시, 이곳 전시장 안에서 만나게 된다—우리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껴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