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림노래 𝄇




2024.04.10- 04.21.











𝄆 𝄇1)





조유경 (유영공간 디렉터)





기억은 주관적인 감각의 저장이다.
자의던 타의이던 어떤 시간 안에 ‘나’와 유기적 관계 안에 있던 감각들이 주체적인 감각으로 저장되어지는.

어떤 평범한 날의 저녁시간, 식사 후 거실 한켠에 앉아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건네어주는 찻잔과 그 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순간 느낀 따뜻하고 애정이 담긴 그 공기와 모습을 기억하고자 사진으로 기록한다. 시간이 지난 후 그때의 형상이 모두 기억나진 않지만 떠올리고 싶을 때 찍어둔 사진을 꺼내본다. 사진을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그 시간이 다시 돌림노래처럼 반복된다. 아마 두 사람의 손은 맞닿은 적이 없는 듯한데 사진 안의 두 사람은 어쩐지 손도 마음도 맞닿아 보인다. 두 사람의 형태가 둥글게 둥글게 마음에 남는다. 2)





1.

정지은은 시간이 흐르며 원래의 형태는 뭉뚱그려지고 명확한 기억은 없으나 남아있는 순간과 감정의 잔여물, 또 그로 비롯된 새롭게 느껴지는 형태들을 감각한다.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관계와 감정,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것이라고 생각한 나무, 심지어는 대지大地 마저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쌓이고 지나간 형태들로 바뀌어간다. 작가는 그 대상들을 연기 緣起 3)유기체로 바라보고 관찰하며 그가 당시 집중하는 대상을 이미지로 감각한다. 그 이미지들은 시로, 조각으로, 회화로, 점진적인 시점의 변화로 그려지게 된다.

작가는 눈사람을 만들던 저녁, 일상적인 생활, 가족과 주변과의 애정 어린 관계, 작가의 내면적인 감정과 현실, 즉 대상의 직관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진다. 이 모든 기억의 잔여물들을 시로서, 조각으로서 만들어내며 이미지로 확장시켜 나가게 된다.





2.

정지은의 작업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명명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을 단어로서, 글로써 형태를 만들어주는 '시'쓰기를 통해 시작된다. 조각의 단계로 넘어가기까지 감각의 관찰과 조탁의 과정을 시에 적용시킨다. 그로 인해 언어의 대상화, 대상의 언어화로 인한 조형적인 시, 하나의 이미지로서 남는 시를 창작한다. 작가가 조각적 특성을 시에 반영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은 공간성과 시간성의 동시적 강조이다. 다 다른 이야기들처럼 보이지만 공통되는 관계성의 정서가 있다.



그리고 그 관계의 공간성안에 양감을 불어넣어 무게를 만든 조각들은 그 시적 이미지들로부터 자립한다. 입체적이지만 납작한 조각들은 종이로부터 나와서인지 실재적 공간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형태와 사물의 조합들로 만들어지며, 유사한 맥락의 대상들만 어렴풋이 떠오르게 한다.



작가는 그 조각들을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하고 인식시킨다. 이는 회화 안의 이동시점을 통한 사물 혹은 풍경의 표현에도 유사한 점이 있다. 이동시점은 하나의 시점으로만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아우르며 살피는 것으로서 우리는 미처 보지 못했던, 감각하지 못했던 순간의 면과 감정, 관계하는 세계와의 현상을 보게 만든다. 조각에서 감정은 표면적으론 사라진 것으로 보이나, 회화로서 다시 불러일으키게 된다.



3.



"언어적이든 회화적이든, 사유를 복사하는 것이 아니며, 기호는 이미 정의되고 완결된 의미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기호와 의미가 미끄러지면서 빈틈이 생기므로 기호의 의미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이며 침묵적이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





관계와 사랑, 매듭을 함의하는 조각이 있다. 조각은 정물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조각은 회화로 남겨진다. 캔버스 안의 매듭은 당나귀 머리로도, 토끼의 귀로 보이기도 한다. 그려진 빛과 여백의 공간의 색이 만들어낸 또 다른 조각의 잠재적 실재의 모습이 된다. 더 이상 머릿속과 같은 현실에 있던 풍경은 아니지만 추상적이지도 않은 실재. 그림으로 들어가 버린 조각과 그 아래에 내려앉은 강한 그림자에 그 모든 대상의 반영은 실재하게 된다.





결국 작가에게 시와 조각 그리고 회화는 작가 실존의 반영이며, 기억의 실재 발산이다. 시를 쓰고, 조각을 만들고, 조각너머의 또 다른 형상을 그려내며 정지은만의 주관적 형태의 기록방식을 구축해 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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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에서 쓰이는 기호인 도돌이표. 반복을 지시하는 기호.

2. 작가의 <1004> 작업과정참조

3. 모든 현상은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하며,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음을 의미하는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