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주(b.1996)는 캔버스 위에 페인팅을 하거나 조각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시공간을 넘나들며,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들을 손으로 붙잡으려 애쓴다. 그는 시간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만난 대상들과 이별하는 경험을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 작업 과정에서 떠오른 기억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마침내 하나의 물리적 공간으로 모인다. 그 공간 속에서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장소와 이어지며, 우리 그 안에서 시간들이 끊어지지 않은 채 맞닿아 있다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이혜림(b.1992)은 변함없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망각’이라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며, 시간이 흐를수록 특정한 장소와 풍경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현상에서 작업의 출발점을 찾는다. 그는 작업의 주된 재료로 종이를 선택하고, 재료를 가공하고 종이를 뜨고 말리는 일련의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인 시간을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반복 끝에 형성된 텍스처와 형태는 기억이 희미해진 이후에도 끝내 남는 ‘뼈’ 혹은 ‘뼈대’를 연상시키며, 개인의 망각을 넘어 보다 보편적인 시간의 구조를 드러낸다.
이처럼 두 작가가 시간을 마주하는 태도와 관점은 분명히 다르다. 손연주가 개인적이고 내밀한 기억의 층위를 따라 시간을 더듬는다면, 이혜림은 시간을 종이에 쌓아 올리며 외부 세계와 관계 맺는 기억의 형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작가는 모두,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가 결국 하나의 ‘공간’을 형성하고, 그 공간 안에서 기억들이 서로 연결된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 이들이 작업을 통해 만들어가는 공간은 시간과 기억이 교차하고 겹쳐지며 살아 숨 쉬는 장소로 변모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며, 우리는 태어나고 사라지는 그 자리 위에서만 삶의 실체를 갖는다. 두 작가에게 있어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을 품고 삶의 흔적을 머금은 중요한 존재다. 전시 공간 또한 작품이 놓이고 보여지는 장소를 넘어, 작가의 시간이 머무르고 관객의 시간이 겹쳐지는 하나의 장이 된다. 본 전시를 통해 공간을 탐닉하고 전시 공간에 스며든, 우리 곁을 머물다 떠나간 것들에 대해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